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콩 영화 (문단 편집) === 1950-60년대 ===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자, 상하이는 영화 산업이 완전히 쇠퇴하였고, 홍콩은 중화권 영화계의 중심이 된다.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대만의 [[장제스]] 또한 공산당에 질세라 현실 비판을 엄금하는 억압적인 문화 정책을 실시했기 때문에 창작 및 언론의 자유를 찾아서 많은 영화인들이 홍콩으로 망명해 온 것이다. 영화인뿐만 아니라 많은 대륙인들이 홍콩에 도피함에 따라서 홍콩에서는 대륙인들이 많이 쓰는 [[표준중국어|중화민국 국어]]와 홍콩 토박이말인 광동어가 영화 언어로 경쟁했다. 이 때문에 홍콩 영화는 자막을 꼭 붙였다. 이런 한자 자막은 현재도 대부분의 홍콩 영화에 들어가고 있으며, 심지어는 대만이나 홍콩의 TV 프로그램에도 대부분 들어가고 있다. 여기에 배우들 또한 광동어나 보통화의 둘 중 하나만 유창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더빙도 필수적이었다. 홍콩은 [[영국령 홍콩|영국의 식민지]]로서 영국의 [[영국/사법|법률 체계]]에 의해 다스려졌기 때문에, 서방 수준의 창작의 자유를 가지고 있었고, 이 때문에 홍콩 영화인들은 금기 없이 수많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이 당시 특기할 만한 작품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영웅본색]]의 원작인 동명의 작품(1967)과 [[추위안]] 감독이 연출한 '흑장미' 시리즈 등의 광둥어 잔편(殘片)이 있다.[* 훗날 유진위 감독이 이 시기의 광둥어 잔편의 향수를 느껴 이를 소재로 하여 '92 흑장미 대 흑장미'를 연출한다. 이 작품은 홍콩 코미디 영화 중에서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1950년대 중반부터 [[화교]] 자본인 소씨형제유한공사(쇼브라더스, Shaw Brothers), 국제전영무업유한공사(전무, 國際電影懋業有限公司, Motion Pictures & General Investment, LTD) 두 회사가 홍콩에 진출하였고, 이 두 영화사는 홍콩 영화 시장을 쟁패하기 위해 거의 전쟁 수준의 치열한 경쟁을 펼쳤지만, 이 경쟁은 전무의 회장이었던 육운도가 [[1964년]] 대만에서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면서, 전무의 사세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쇼브라더스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전무는 1970년대에는 촬영 장비와 스튜디오를 쇼브라더스에서 갈라져 나온 후발 제작사인 [[골든하베스트]]에 넘겨주고, 영화 제작을 접고 영화 배급에만 치중하게 된다. 쇼브라더스와 전무는 주로 [[표준중국어]](보통화)로만 영화를 제작하였고, [[https://zh.wikipedia.org/wiki/%E8%95%AD%E8%8A%B3%E8%8A%B3|소방방(蕭芳芳)]][* 1947년 상하이 출생으로 1954년에 아역배우로 데뷔한 이래 200 편에 가까운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90년대 이연걸 주연 홍콩 무협영화 방세옥 1편과 2편에 방세옥의 어머니 역을 맡기도 했으며 홍콩 금상장, 대만 금마장, 베를린 영화제,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등 다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배우.]과 [[https://zh.wikipedia.org/wiki/%E9%99%B3%E5%AF%B6%E7%8F%A0|진보주(陳寶珠)]][* 당시 홍콩의 일반적인 샐러리맨들이 한 달 평균 급여로 100 [[홍콩 달러]]를 받던 시대에 진보주는 영화 한 편의 출연료로 무려 '''2만 홍콩 달러'''라는 거액을 받을 정도였다. 그녀는 1년에 평균 '''15-20작품'''을 찍을 정도로 엄청난 다작을 했었는데, 영화 출연만으로 1년에 '''3-40만 홍콩 달러'''를 번 셈이다. 이게 그녀의 나이 '''10대'''였을 시절의 수입이다.]라는 두 아역배우 출신의 아이돌 스타 여배우의 인기로 인해 절정이었던 광동어 영화의 위세는 1960년 후반에는 쇼브라더스의 물량공세에 밀려 완전히 몰락하고 만다. 광동어 영화를 대표하던 거장인 [[추위안]][* 유성호접검(1976), 초류향(1977), 의천도룡기, 의천도룡기대결국(1978), 영웅무루(1980), 서검은구록(1981), 일겁(1982), 마전도룡(1984 등의 무협영화를 연출했으며 장국영 주연의 우연(1986), 주윤발, 엽천문, 왕조현 주연의 대장부일기(1988)을 연출하기도 했었다. 연출과 각본은 물론, 배우로 참여했던 작품 역시 꽤 되며 [[폴리스 스토리]]에선 악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은 쇼브라더스에 입사[* 원래는 전무에 먼저 입사를 하였지만, 전무가 영화 제작을 접으면서 쇼브라더스로 이적하였다.]하여 만다린 영화[* 물론 추위안이 쇼브라더스서 만다린 영화만 만들었던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1972년에 [[TVB]]와 쇼브라더스의 스타 배우들을 총동원하여 만든 광동어 코미디 영화 <72가방객>은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였고, 그 해 개봉한 홍콩 영화들 중 가장 높은 수익을 올렸다. <72가방객>은 유명한 광동어 연극이 원작으로 과거에도 영화화된 적이 있다. [[주성치]]의 <[[쿵푸허슬]]>의 돼지촌 세트는 이 영화의 세트에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를 만들어야 했고, 진보주는 영화를 그만두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